누가 20대를 죽였는가 - by blus
위의 포스팅을 보고 나도 평소에 생각하던 걸 정리하고 싶어졌따.
'20대 사이에 먹고사니즘이 팽창한다는 것은 곧, 이 사회가 먹고사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부분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정확히 생각은 안나지만 대충 이랬는데;; 암튼 이 부분에 너무 감동을 먹었따.
결국 씹퉁씹퉁 하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무지 길어졌지만, 암튼 뭐... 썼으니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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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는 대충 가겠다. 전에도 썼지만, 20대를 골빈놈들이라 욕하는 386이 이 한국에 차고 넘쳤다.
이하의 말로 20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게 옳은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없이 냉소에 차고 짜증에 복받힌 사람들의 어조를 빌어 소위 '한심한 20대'를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학문보다는 성적에, 미래보다는 진로에, 직업보다는 수입에 관심이 많은 자들. 대학엔 왜 가는지 모르고 공부는 왜 하는지 모르고 경쟁은 왜 하는지 모르고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하는지 모르고, 스타벅스는 왜 비싼지 모르고, 모든 '왜'라는 질문이 배제된 채로 도식적인 성공과 세련됨만을 추구하는 이들. 당장에 내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그만이며 당장에 내 집에 맛있는 냄새가 풍기면 그만이다. 무슨 연유로 내게 돈이 있는지, 무슨 연유로 저 냄새가 풍기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하며 알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정정해야만 하겠다.
20대는 저런 것을 알아서는 안 되었다. 저런 것을 알아버린 나머지 위기에 빠져 있는 나의 예를 들어 보겠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항상 숙제라는 것이 불만이었다.
당시의 숙제란 그저 전과를 펴놓고 그것을 공책에 베껴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따로 그 내용을 숙지하고 이해해가며 베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베껴가지 않으면 맞고, 베껴가면 무사히 넘어가는 것... 숙제를 한다는 것은 그저 체벌과 경멸에서의 도피일 뿐이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시험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
소설가, 가수, 만화가 따위를 장래희망으로 갖던 나같은 좆중딩에게 수학이나 물리를 가르치며, 그것이 어째서 가치 있는 학문이며 얼마나 경이로운 학문인가를 알려주는 사람이나 매체는 없었다(있었다고 해도 내게 닿지 않았다). 그냥 그 과목의 시험 문제지를 잘 풀면 그것으로 족했다. 칭찬을 들었다. 남들보다 우월해졌다. 장래가 보장되는 것 같았다.
주어진 텍스트를 외우고 문제를 성실히 푼 것 외엔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승자가 되었다. 고등학생때의 나는 특기적성 교육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
학생들의 개성과 자질을 살려준다는 취지는 공허하게 울리고 정작 내게 떨어진 선택지는 국영수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강제되었다. 그에 대해 항의하자 돌아온 대답은, '싫어도 일단 열심히 해 두면 득이 된단다 빙추야' 였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내 급우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나는 강변을 거닐며 시를 읽으라 촉구받아야 마땅했고 급우는 음악에 대해 식견을 넓히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다듬을 기회를 가졌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공부, 오로지 공부 외의 노력은 조금도 요구받지 않았다. 아니,
공부 외의 노력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탄압받았다. 나는 옳건 그르건 저런 '생각'들을 했기에 숙제를 잘 해가지 않았고,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고, 특기적성 교육을 받지 않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외의 것을 절대 억지로 하지 않으려 했다. (이하는 내자랑이므로 대충 훑어 읽으시길) 아무도 읽으라고 하지 않는 책을 읽었고, 사상가들에 대해 공부했고, 음악과 시에 심취했다. 소설을 읽고 만화책을 읽고 인문서적을 읽었다. 구름과 별과 달을 즐겨 바라보았다. 사회주의가 왜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지를 알았고, 그 젊은이들이 왜 끝에가선 절망하는지를 알았다. 민주주의를 회의했고, 안타까워했고 희망했다. 정의와 법에 대해 공부했고 역사와 미래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이런저런 학문을 기웃거렸다. 약자와 강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이길 때면 항상 나로 인해 지는 이가 어딘가에 있음을 통렬히 느꼈다. 세상의 부조리와 그 해결에 대해 고민했다.
자! 이런 나를 남들 앞에 소개해 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성적이 나쁘며 학벌이 별로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돈을 벌지 못하는 여자다.
아무리 꿈을 품은들, 아무리 원대한 마음을 가졌다 자부하고 싶은들 나는 이 한국 사회 안에서 저것 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목표지만, 그걸로 인해 돈을 벌 수 없는 이상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을 누군가가 한다면 난 그에 대고 '변명'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 변명을 해 보자면, 옛날 국민학교 도덕책에서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부분이 있다. 직업이란 '자아 실현의 도구'라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나의 직업을 택했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로 했다. 생계의 유지를 위협받게 되는 경험마저도 소설을 쓰기 위한 밑거름으로 쓰고 싶다 생각했다. 좋은 소설을 쓸 수만 있다면 그로 인해 내 인생이 어디까지 망가져도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도, 취직을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망가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거다...
고깃집에서 뼈가 닳도록 일해 겨우겨우 나를 키운 나의 홀어머니가 묻는다.
"너 글을 쓸 거라면 빨리 써서 장래를 확실히 다져둬야 하지 않겠니?"
꿈이 많은 친구에게, 가세가 기울어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네 어머니 아버지가 묻는다.
"너 형제들도 있는데, 취직해서 돈을 벌어와야 하지 않겠니?"
바람처럼 살아가고 싶은 청년에게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묻는다.
"너 나랑 결혼해서 살려면 성실해져야 한다는 거 알지?"
우리를 낳아준 부모의 가정을 위해, 우리가 꾸리게 될 미래의 가정을 위해, 우리는 공부 외의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절대로 안 되었다.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었고, 좋은 자리에 취직할 수 없었다. IMF를 목도하며 우리는 공포에 떨었다. 성실하고 유능하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려나갔다. 대비해놓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었다. 대비를 해야만 했다! 실업자가 되어 가정을 도탄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대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겐 꿈이 있었다. 하지만 쫓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쫓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나 고민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꿈은 품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감으로써 불합격하게 되는 1명에 대해선 잊어버리는 편이 공부에 집중하기엔 더 나았다. 인정받기 위해선 다른 아무 것도 필요 없었다. 그저 붙임성이 있고 공부를 잘 하면 되었다.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승리자, 못하는 사람은 패배자일 뿐이었다.
"영어를 실제로 어디에 쓰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왠지는 몰라도- 영어를 잘 하면 취직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한국에서 20대로 살아가는 자에겐 생각보다 많은 것이 요구된다. 외모를 가꾸는 것, 취업에 필요한 점수와 자격증과 경력을 쌓는 것, 세계 정세를 이해하는 것, 한 달에 한 권 쯤은 책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 미술관에 가는 것...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우리는 절대로 가난해선 안 된다. 한국에서의 소박한 삶이란, 서울 등지의 대도시에서 살지 않는 삶이란- 뉴요커같지 않은 삶이란, 낙후되고 찌질하고 불편하고 더럽고 힘든 것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귀향하여 고향을 열심히 가꾸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ㅡㅡ;;)
이렇게까지 힘겨워하고 괴로워야해만 간신히 체면 차리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은, 절대로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사람을 스스로 온전한 사람이 못 되도록 한 방향으로 쥐어 짜는 사회를 어떻게 건전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고리를 끊을 방법을 386은 알고 있는가? 우리가 당장 우리 스스로의 취직만을 생각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남을 아끼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생각해도 낙오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있나?
내가 보기엔 아니다.
보여달라고 요구하진 않겠다. 그건 그렇잖아도 드러운 세상 살기에 바쁜 386에게 너무 가혹한 짓이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사회에서 비슷한 이유로 꽁꽁 묶여있는 처지라면, 적어도 옆에 더 꽁꽁 묶인 사람 보고 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뭐 결론은 이정도. 용요사미(龍腰蛇尾)?
보여줄 수 있다면 좀 보여주면 고맙겠다, 정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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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많이 들어간 글인지라 20대 담론에 오르긴 무리라 판단, 이오공감에서 삭제했습니다. 추천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